전시자료

(1979)鄭文圭 EVE(정문규 EVE)=EXPOSITION CHUNG MUN-KYU

기본정보

작가명
정문규
전시장소
관훈 미술관
전시기간
1979.10.10. ~ 1979.10.16.
작성자
아르코예술기록원

구성 및 개요

화면의 질(質)로서의 누드

1.
캔버스에다 일정의 물감을 칠하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북북 나이프로 긁어내어 버리고는 다시 칠하고, 또 긁어내어 버리는 작업을 거듭하는 이 작가의 일차적인 작업의 내용은 퍽이나 역설적이다. 캔버스에다 일정량의 물감을 발라 올리면서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발라 올라진 물감을 긁어냄으로써 그림을 완성시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락없이 그린다고 하는 행위가 곧 지운다는 행위와 일치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이프로 긁어내다가 때로는 못으로 긁어내어 화면에 흠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실지로 화면에 칠해진 물감보다 긁어내어 버린 물감이 더 많음은 물론이다.
이런 부단한 과정을 통해서 화면상에 일어난 밀도와 뉴앙스를 포착하면서 화면 자체가 그 어떤 표현성에로 나아가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지우고 있는 것은 맹목적으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린다는 방식의 역구조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지운다는 방식의 특별한 의미성이 포착된다.
그의 화면엔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시각적 대상을 갖고 있다. 누드이다. 때로는 하나로, 때로는 군집으로 나타나는 누드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있는 누드는 누드라고 하는 일정의 대상을 옮겨 온 것은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일차적인 방법이 지운다고 하는 독특한 화면상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대상성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누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누드가 실제로 존재하는 누드의 재현이 아니라, 화면 자체의 극히 자연 발생적인 방법을 통해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화면에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면 자체가 어떤 대상을 대신한 질로서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까. 그의 부단한 긁어내기 작업은 대상성이라고 하는 「일루젼」을 지워가면서 그것이 화면의 구조화에로 이르게 하는 미묘한 추이라고 할 것이다. 즉, 누드와 화면은 두 개의 상이한 질로서 존재하지 않고, 일체화된다. 화면과 대상은 결코 분화되지 않는다. 화면 자체가 누드이고 누드 자체가 화면이다. 여기에 회화는 회화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란 회화 자체의 독립성을 다시 읽게 된다.

2.
정문규씨가 누드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70년대에 들어오면서이다. 누드 시리즈를 발표하기 이전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니지 않는 추상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의 작가적 편력을 보면, 50년대 후반에 등단하여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추상 작업을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이 기간은 추상표현주의가 커다란 물결을 형성하고 있을 대였다.
그의 작품 역시 한 시대적 추세 속에 묶을 수 있을 거시다. 그러나 그의 화면은 어딘가 모르게 고집스럽게 그러한 추세에 맹목적으로 휘말려 들지 않는 강인한 방법의 추이를 지속해 보였다. 한 말로 표현한다면 화면의 질에 대한 그 나름의 방법상의 추고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그의 최근 작품상에 나타나는 화면의 질에 대한 방법적 추고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초기의 방법적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70년대 초반의 누드에서는 다소 그러한 의심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70년대 초반의 누드가 강렬한 대상성을 들어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이 같은 대상성은 화면의 질로서 들어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지속적인 화면상의 방법적 추고가 두드러지게 부상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극히 한 때의 추상 자체에 대한 과심을 겪고는 자신의 방법의 재확인에 이른 셈이다. 초기의 추상 경향이나, 누드 시리즈의 초기 작품에 비한다면, 최근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특성은 색채에 대한 대단히 금욕적인 태도랄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색채 자체가 극히 제한되면서, 화면엔 명암이라고 하는 대비의 극적인 효과가 시도되어지고 있음이다. 이 같은 화면상의 특성은 그의 과거의 작품에 비한다면 확실히 두드러진 변화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단순한 표면상의 변화는 아니다. 색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어나는 대상성의 설명을 그만큼 지워 갈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대상 자체가 화면에로의 구조적인 심화 현상이기 때문이다.
누드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에서 강하게 떠오른 것이 에로티시즘이었음은 물론이다. 아직도 그의 작품을 관능적인 측면에서만 보려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적어도 누드가 관능의 일차적인 관심이란 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근의 누드는 어떤 관능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이 굳이 관능을 들어낸다고 하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면 자체의 구조성을 들어내는데 경주하고 있기 때문에서이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여체시대」 출발

정문규의 「여체연작」이 선을 보인 해가 1971년도로 기억된다. 그 무렵의 여체의 형태나 질감은 다분히 입체파 경향에서 해체되어 초현실주의풍이 농후한 실험적 모색기로 진단을 내려도 무방할 듯하다. 70년대 초 정문규의 회화는 다양한 색체의 시위가 눈을 끈다. 소위 여체를 주제로 한 핑크빛 시대의 소산물들이다. 발색과 실험 정신의 혼합은 정문규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화포위에 노출시킨다.
정문규의 회화가 문학적인 영역에 침수되어 있는 인상을 주는 것도 그러한 에로스의 표정 때문이다. 에로스에 대한 그의 문학적 향기는 70년대 초에 돌연변이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아니다. 68년부터 동경예대 대학원에 적을 두고 객수의 고적감을 달랠 때부터 이미 여체의 이미지는 싹이 튼 걸로 봐야 한다.
인간의 관능은 애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애정은 사랑을 수반한 감정의 형체이다. 영혼에 대한 호소가 에로스의 본질이라면 정문규가 지향하는 여체의 신비주의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다.
70년대 초 「핑크색 경랑기」를 거쳐 정문규의 주조색은 75년, 77년 여체 개인전을 계기로 배경이 암갈색으로 변모한다. 뿐만 아니라 4년간의 공백기에서 표현 방법상의 문제가 대두됨을 직감할 수 있다. 화포를 가득 채운, 끊임없이 이어지고 결빙되는 사선의 수법이 그 해답의 정체이다. 핑크 대신 여체는 갈색 배경에 백색으로 점철된다. 심지어 어떤 여체는 사선으로 침식되어 인체의 풍만함을 감금함으로써 도발적인 양상을 나타내는가 하면, 건조하게 갈라진 요철 위에 백색 모필이 슬쩍 지나간 마티엘의 효과는 흔히 동양화에서 목격되는 운필의 여유와 감정을 실감하기도 한다.
정문규의 사선인체는 먼저 화포에 색을 칠한 후, 예리한 면도날, 혹은 송곳 따위로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그어나가는 작업이다. 사선이 결코 좌우로 맞부딪치지 않는 것은 횡선을 긋지 않는 그의 결백성 때문인 듯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일률적인 작업의 몰입은 비정한 자기 고백의 엄숙주의를 잉태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75년에 와서 여체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등장한다. 복수일 경우, 누드는 동성일 경우도 있고 이성으로서 포즈를 나타낸다. 동성일 경우, 여체의 바른 손이 상대방 유방을 움켜쥐는 찰나의 포즈도 그렇지만, 이성의 두 자태는 측면으로 서 있는 남자와 고개를 돌린 채, 양 무릎을 꿇고 앉은 여자의 부끄러움이 에로티시즘을 의식한 인간 본성이 작태의 추적과 무관하지 않다.
사선의 화가라면 흔히 우리는 장 뒤비페가 연상된다. 뒤비페의 그림이나 조각에는 푸른 선과 붉은 선이 왕래를 가지는 이른바 루울루프(L. Hourloupe) 기법이 특징인데, 자제의 힘에 의해 꿈틀거리는 그런 선적들과 대비해 볼 때, 정문규의 사선은 쾌감을 동반한 의식의 행위가 그 차이점을 드러낸다. 루울루프 기법은 어떤 면에서 무의식적 행위에서 태동하여 조형의 특성을 다진 뒤의 뒤비페(Dubuffet, Jean) 예술의 개성으로 발화되었다면, 정문규의 의식적 사선의 시도는 그 실험성 때문에 변주될 여지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인이고 화가였던 앙리 미쇼(Michaux Henri)는 우리 삶의 총체를 이렇게 정의했다. 비밀스러운 열기, 건실한 작별, 포도의 침묵, 칼 맞은 사람의 비명, 불타는 감정과 차가운 휴식의 총체, 그것이 우리 모습이다.
정문규에게 있어서 비밀스러운 열기는 그가 심취되고 끊임없이 개척하는 여체, 즉 육화된 언어들이다.
정문규의 여체들, 혹은 남녀 듀엣의 얼굴에는 세밀한 표정들이 삭제되어 있다. 한결같이 나체들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저망과 환희, 만남과 헤어짐, 결합과 소외의 육화된 언어들은 66년 그의 세 번째 개인전에 출품되었던 「인간 1」이나 「인접」같은 작품들이 풍기던 추상의 세계에서 구상으로 되돌아 온 행적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체라는 대상을 자기 나름의 주관대로 용해시켜 예술로 승화시킨 적지 않은 세계 화단의 거목들을 살펴보자면 먼저 드 쿠닝(De Kooning, Willem)을 앞세울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콘(Bacon, Francis)의 즉물적 우울함, 인체를 곤충에 비유시킨 맛따(Matta), 포프아트 계열의 조각가 조지 시갈(Segal, George), 경향은 다르지만 인간의 공복감을 세밀화로 묘파한 와이에스(Wyth, Andrew) 등이 현실의 황량한 심상 풍경을 선과 색감으로 정복했다. 그런 면에서 정문규의 작업은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한 일백호 대작 「이브」가 예증하듯 기계 문명과 극도로 산업화되어가는 물량주의 시대를 오히려 역행하는 휴머니즘의 발현으로 인지된다.
정문규의 고립된 인체들은 동성 간의 듀엣으로, 다시 이성간의 열락으로 호흡이 발전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나부들이 누워있는 정물로서 품위와 미소를 견지하고 있다면, 뒤샹(Duchamp, Marcel) 이후, 정문규로 이어지는 동적나부들은 운동과 리듬이 강조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모든 여체는 정문규에게 있어서 비정한 물질이며 대상이자, 인간의 결속과 유대를 재탈환하려는 정신의 매체이자, 사물과 사물을 응결하는 미의 가교이다. <육체는 꽃이 아니다>라는 그의 예리한 사선의 탐색과 경도는 이브의 고정관념을 파괴한 물리적 실상으로 확대된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조선일보 <70년대화가론> 1978년 7월 5일자에서
시인 김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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