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은 고려시대의 왕들 중에서 개혁정치를 추구하여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운 왕이다.
전기의 공민왕은 막강한 대국이었던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10여년의 원나라 궁정생활을 하고 돌아와 여러 차례 개혁정책을 통해 나라의 기강과 질서를 잡는다. 그러나 원나라의 종속에서의 해방과 사회 전반의 과감한 개혁을 추구했던 공민왕은 이미 즉위 초부터 자신이 내세운 개혁을 추구하기에는 모순된 정치구조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그의 신료들이 개혁 세력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원나라때부터 그를 보좌하며 그가 왕으로 즉위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친원세력도 중심세력으로 함께 있어서 개혁과 보수, 안정과 변화라는 상반된 양면적 속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공민왕은 개혁정책이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현실정치를 포기하고 신하들을 불신하게 된다.
죽음의 공간이며 동시에 삶의 공간인 "수릉"은 죽기 전에 미리 지어 놓은 임시 가묘라는 뜻으로 공민왕의 자포자기적 삶을 상징적으로 함축하여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