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

중요무형문화재 양주별산대놀이 발표공연

공연단체
한국가면극연구회
공연장소
중앙국립극장
공연날짜
1970.8.24 ~ 1970.8.24
장르
전통
연출
김기수
행사명
박상환옹 연희생활60년기념
작성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공연설명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연희되어온 산대도감극의 일분파로 「양주별산대놀이」라고 일컬어왔다. 오늘날 산대놀이라고 하면 양주별산대놀이를 가리킬만큼 유일한 것으로 남아있으나 본산대라면 녹번 아현등지의 산대놀이와 어떻게 다른지 지금은 본산대가 다 없어져 알 길이 없으나 본산대를 본받아 만들어졌다고 하는 양주별산대놀이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고 일러온다.

양주별산대놀이는 4월 초파일 오월단오 팔월추석에 주로 연희되고 기타 대소명절 외에 한천의 기우제 같은 때에도 연희되었는데 제 격식대로 하면 놀이 전의 고사에서 떡과 삼색과일 외에 소머리 돼지다리 등 푸짐한 제물이 올라야 하고 그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아야 놀이가 시작되었다.

양주별산대놀이의 분파형성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유래설이 전한다. 양주골에서 약 200년 전부터 해마다(주로 4월 초파일과 오월단오 추석에) 한양사직골 딱딱이 패들을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놀게 하였는데 그들은 지방순회 기타로 공연약속을 어기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여기에 불편을 느낀 나머지 양주골에서 신명이 과한자들끼리 사직골 딱딱이패를 본떠 가면 기타를 제작하고 실연한 결과 그 성과가 나쁘지 않아 의외의 성공을 거두고 그 뒤부터 발전시켜 내려온 것이 양주산대놀이이며 당시의 중심인물은 이을축이라는 사람이었다고 하며 그는 양주의 최초의 가면제작자로도 전한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한국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음악반주에 춤이 주가 되며 거기에 무극적인 몸짓과 동작이 따르고 대사로는 덕담과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과 그리고 노래를 곁들인다. 즉 가무적 부분과 연극적(희곡) 부분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좌 연잎과 눈끔적이 왜장녀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역은 대사가 없고 춤과 못짓과 동작으로만 연기하지만 그와의 역들은 대사와 춤과 몸짓 및 동작으로 연기한다. 춤사위의 분류는 어느 탈춤보다 제시하여 그 속에는 한국민속무의 기본을 찾을 수 있으며 가면은 봉산탈춤에 비하여 보다 사실적이며 등장하는 배역 총인원수는 32인이나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는 가면수는 보통 22개 내외가 된다. 그 내용은 크게 전 8과장 8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과장별로 보면 아래와 같다. 길놀이 고사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과 상좌 제3과장 목중과 옴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제5과장 팔목중 제1경 염불놀이 제2경 침놀이 제3경 애사당북놀이 제6과장 노장 제1경 목중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 제7과장 샌님 제1경 의박사령놀이 제2경 포도부장놀이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 즉 그 내용은 산대도감계통극의 공통된 내용으로 이조서민문학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파계승 몰락한 양반 사당 무당 하인 및 기타 노유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현실폭로와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을 보여주며 주제로는 ➀벽사의 의식무 ➁파계승에 대한 풍자 ➂양반에 대한 모욕 ➃남녀의 갈등 ➄서민생활의 곤궁상의 표현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당시의 특권계급과 형식도덕에 대한 일종의 반항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서민생활을 연출하는 민중극이다.
 

출연진

이근성(지도), 양소운(지도), 장준석, 이길선, 박숙자, 이명선, 김수연, 신명옥, 손승남, 김재규, 박상환(상좌 애사당), 유경성(소무 왜장녀 연회지도), 고명달(노승 포도부장), 함춘길(장고), 신순봉(소무), 석거억(목중), 박교응(완보 도끼), 노재영(옴중 취발이), 김상용(목중 말뚝이), 박승호(목중 신장수), 김영수(목중 피리), 김영자(애사당), 김병상(말뚝이 목중), 최창주(쇠뚝이 목중), 이승환(샌님), 유한란(원숭이), 이병권(목중 상좌), 고화영(목중), 석종관(목중 상좌), 오명옥(피리 외 다수)

제작진

김천흥(총지휘), 유민영(기획), 김재권(기획), 홍정희(미술), 이우영(조명), 윤황(무대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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