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줄거리
마흔 세 가구,2백 명 남짓 살고 있는 육지에서 고립된 어느 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 담겨진 갈등은 거의 우주적이다. 죽거나 죄수가 되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는 섬. 죽을 때가 되면 바다로 걸어 나가 바다에서 죽는다. 물이 그 섬에서는 전부다.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물을 썩은 몸뚱아리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시체는 도로 건져져 초분 속에서 어포처럼 말려진다. 한 자리에 소피보는 동안 서 있어도 물이 고이는 곳. 그 곳에서는 마른자리에 눕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이다. 헌데 그 섬에 무서운 재앙이 닥쳐온다. 생계 수단인 미역밭이 조류를 타고 흘러드는 폐수로 인해 전멸하고 미증유의 안개가 섬을 휩싼다. 섬의 관리는 주민을 뭍으로 이주시키려 한다. 그러나 죽거나 죄수가 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는 것이 섬의 질서이다. 그 위에 죽은 노파의 시신이 또한 없어진다. 죽은 노파의 시신을 찾지 않고는 나는 새 한 마리도 섬을 떠날 수 없다. 5년 전 항해사를 죽인 죄로 뭍으로 간 노파의 아들 기결수 1970번이 법의 문상을 받아 법의 동행자와 함께 이 섬에 돌아왔으나 물의 법과 섬의 질서 틈새에 끼인 동기간들을 구할 길이 없다. 마흔 세 가구 2백 명 남짓 살고 있는 이 섬에서는 친어버이 말고는 전부 숙부이고 조카다. 모두 가깝지만, 말하자면 일가붙이, 동기간들인 것이다. 노파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아는 것은 ‘임자’ 뿐. ‘임자’는 이 섬의 유일한 여자로 질서를 지킨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