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제9회)김자경오페라단 공연 - 나비부인 - MADAMA BUTTERFLY

공연단체
김자경오페라단
공연장소
시민회관
공연날짜
1972.3.16 ~ 1972.3.18
장르
오페라
연출
오다니 기요꼬
작가
쟌 L. 롱
작성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공연설명

이태리 오페라의 사대작곡가 Bellini, Donizetti, Rossini 및 Verdi에 뒤를 따라 이름난 작곡가는 풋치니라 하겠다. 풋치니는 밀라노 음악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의 생전에 12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 나비부인은 라 보엠, 토스카와 함께 그의 3대 오페라이다. 풋치니 오페라의 특색은 어느 극장에서든지 모짤트, 봐그너 및 베르디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언제아 상연수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극장을 위하여 작곡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것 같다'고 한 그의 말은 자기를 잘 표현한 말이다.
쟌롱(John Long 1861-1927)의 원작을 가지고 벨라스코(Belasco 1859-1931)가 희곡으로 만들어 상연하여 대호평을 받았고, 원작 나비부인 소설도 1897년에 미국잡지 Century Magazine)에 발표되자 이국적인 정서가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호기심이었던 관계로 소위 베스트쎌러로 되었던 것이 Belesco의 성공을 확실케 했다.
풋치니가 이 연극을 London, Duke of York 극장에서 관람하고 오페라화하고 싶은 충동을 이르키고, 출판사장 Riccordi의 협력을 확약방다 Giacosa(1841-1906 문단의 중진)와 부호이며 온순한 애국지사이었든 Illica(1859-1919) 두 사람은 마동 레스코 이래 풋치니의 대본가이며 서민생활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는 사실-Verismo의 협력으로 이 오페라가 더 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보아 무방하다.
나비부인의 모델은 일본 명치원년 장기에 산림쓰루(49세에 사망)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의 문소가 양익접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사이에 접접상이라고 불리웠던 것이다(1944년 10월 9일 일본 독매신문취재) 풋치니가 이 오페라를 작곡하려든 무렵에 이태리주재 일본공사부인 대산구자(1870-1955)에게서부터 일본음악의 지식을 얻기 시작했고 때마침 일본음악레코드가 발매되면서 대산가에 입수되므로 크게 배운 바 있게 되었다. 1899년경에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지연되다가 1903년에 즐기는 드라이브에서 큰 부상을 입어 더욱 늦게 되어 1904년에야 완성되었다. 부상당했을 때 제일 먼저 한 말은 '아! 불쌍한 Butterfly'라고 했다는 것은 끝 맺지 못할 생각에서 한 심정일 것이다.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알게 된 영국부호 '시뷜.셀리라'부인과 점점 친근해지므로 그의 부인의 질투를 자아냈지만 그는 '시뷜'은 가장 이해력이 풍부한 여인이라고 변명하면서 700여통의 서신을 교환했다는 에피소드.

출연진

장영자(나비부인), 최혜영(나비부인), 김호성(핑커톤), 김태현(핑커톤), 백남옥(스즈끼), 정영자(스즈끼), 김원경(샤플레스), 이단열(고로), 김선일(고로), 김정웅(본조), 강영중(야마도리), 양수완(코미싸리오), 허윤자(케이트), 김영철(야꾸시데), 곽현주(아기), 김자경오페라합창단(합창)

제작진

벨라스코, 데이비드(희곡), 일리카, L(대본), 지아코사, G(대본), 최연호(무대미술), 이유선(대사번역), 국립교향악단(관현악), 윤치호(합창지휘), 원지수(무대감독), 김성진(연출보), 석경혜(피아노), 차기봉(조명), 김자경오페라단분장실(분장), 김자경오페라단기획실(선전미술), 취미양복점(의상), 김자경오페라단의상실(의상), 김자경오페라단소품부(소도구), 허바허바사진관(사진), 김용현(기획, 진행)

멀티미디어 콘텐츠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