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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인
유민영(柳敏榮)
출생1937
분야연극
사이트예술인상세
본적경기도 용인
활동분야연극학
연구자이진아
시리즈번호267

  • 1. 수련과정
     ∙ 1951~1954   경기도 오산 중학교
     ∙ 1954~1957   한성고등학교
     ∙ 1957~196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문학사)
     ∙ 1961~1966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문학석사)
     ∙ 1973~1974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 연극학과
     ∙ 1984~1987   국민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문학박사)

    2. 일반/수상경력
     1) 일반
      ∙ 1961        경기도 여주여자고등학교 교사
      ∙ 1964~1966   광신상업고등학교 교사
      ∙ 1966~1968   한성고등학교 교사
      ∙ 1968~1971   서울대학교 강사
      ∙ 1970~1980   한양대학교 부교수
      ∙ 1976~1981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 1980~2002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1980~1981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강의
      ∙ 1980~200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
      ∙ 1981~1982   연세대학교 대학원 강의
      ∙ 1981~현직    이해랑 연극재단 이사
      ∙ 1982~1983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강의
      ∙ 1982~1992   중앙일보 신춘문예 심사
      ∙ 1983~1984   서강대학교 대학원 강의
      ∙ 1983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강의
      ∙ 1983~2014   전국연극제 심사위원
      ∙ 1984~1990   한국연극학회 회장
      ∙ 1984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강의
      ∙ 1986~1991   단국대학교 예술대학장
      ∙ 1987~1991   국립극장 레퍼토리 자문위원장
      ∙ 1987~1988   도서심의특별위원회
      ∙ 1988        동아일보 인촌상 심사위원
      ∙ 1989~1991   세종문화회관 운영 자문위원
      ∙ 1984~1992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연극지원심의위원
      ∙ 1989~1991   한국공연예술평론가협회장
      ∙ 1991~2007   옥랑문화재단 이사
      ∙ 1991~2002   이해랑연극상 심사위원
      ∙ 1993~2002   동랑유치진연극상 심사위원
      ∙ 1993~1996   서울시문화상 심사위원
      ∙ 1993~1997   재단법인 대산재단 자문위원
      ∙ 1993~1997   방송위원회 위원(제2기, 3기)
      ∙ 1994~1997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 1994~1997   동아연극상 심사위원
      ∙ 1996. 09.   러시아 국제고등과학원 인문학 원사
      ∙ 1995~1998   예술의전당 이사장
      ∙ 1997~2002   한국연극사학회 회장
      ∙ 1998~1999   대통령 직속 제2건국추진위원회
      ∙ 1999        국립극장 운영심의위원
      ∙ 1999        국립창극단 운영위원장
      ∙ 1999        한국오페라단 자문위원
      ∙ 1999        유니버설 발레단 자문위원
      ∙ 2000~2006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장
      ∙ 2000~현직    김동훈연극상 운영위원장
      ∙ 2001~2002   한국예술경영연구학회 회장
      ∙ 2001        호암예술상 심사위원
      ∙ 2002~2006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 2002~현직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 2004~2010   홍해성 연극상 심사위원장
      ∙ 2005~2006   한국드라마학회 회장
      ∙ 2006~현직    차범석 연극재단 이사
      ∙ 2006~2010   차범석 희곡상 심사위원
      ∙ 2007        서울대학교 대학원 강의
      ∙ 2010~현직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

     2) 수상
      ∙ 1983   일석학술상
      ∙ 1986   서울문화예술평론상
      ∙ 1990   동랑유치진연극상
      ∙ 2000   문화훈장보관장
      ∙ 2002   노정김재철학술상
      ∙ 2006   대한민국예술원상

    3. 연구 활동
     1) 학위논문
      ∙ 1966    석사학위 논문  「柳致眞 硏究 : 韓國 新劇 硏究의 一部로서」
      ∙ 1986    박사학위 논문  「한국개화기연극연구」

     2) 저서목록
      ∙1978    韓國演劇散考,  문예비평사
      ∙1979    金祐鎭 作品集,  형설출판사
      ∙1982    韓國現代戱曲史, 홍성사
      ∙1982    韓國演劇의 美學,  단국대학교출판부
      ∙1982    韓國劇場史,  한길사
      ∙1983    현해탄에 핀 석죽화: 윤심덕평전,  안암문화사
      ∙1984    傳統劇과 現代劇,  단국대학교출판부
      ∙1987    윤심덕 평전 – 사의 찬미,  민성사
      ∙1987    開化期演劇社會史,  새문사
      ∙1989    咸世德戱曲選,  새문사
      ∙1990    喪失의계절,  윤성
      ∙1990    우리시대 演劇運動史,  단국대학교출판부
      ∙1991    한국연극의 위상:유민영 연극평론집,  단국대학교출판
      ∙1996    (우리시대)演劇運動史(개정판),  단국대학교출판부
      ∙1996    한국근대연극사,  단국대학교출판부
      ∙1998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  태학사
      ∙1999    李海浪 評傳,  태학사
      ∙2000    (작지만 큰 극장) 정동극장 이야기,  마루
      ∙2000    20세기후반의 연극문화,  국학자료원
      ∙2000    삶과 문화의 뜰,  푸른사상
      ∙2000    격동사회의 문화비평,  단국대학교출판부
      ∙2001    달라지는 국립극장 이야기,  마루
      ∙2001    한국연극운동사,  태학사
      ∙2004    문화공간 개혁과 예술 발전,  연극과인간
      ∙2006    한국 인물연극사2,  태학사
      ∙2006    한국 인물연극사1,  태학사
      ∙2009    (비운의 선구자) 윤심덕과 김우진,  새문사
      ∙2010    쉰 목소리와 야한 웃음-한국연극의 위상의 개정판,  생생
      ∙2010    한국 연극의 사적 성찰과 지향,  푸른사상사
      ∙2011    한국근대연극사 신론. 하권,  태학사
      ∙2011    한국근대연극사 신론. 상권,  태학사
      ∙2012    인생과 연극의 흔적: 유민영 산문집,  푸른사상사
      ∙2015    한국연극의 아버지 : 동랑 유치진,  태학사
      ∙2016    한국연극의 거인 이해랑,  태학사
      ∙2017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  태학사

    4. 구술자 관련 주요 예술사적 사건
    - 한국연극학회 창립 : 한국연극학회(韓國演劇學會)는 1949년 연극에 관한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위하여 유치진(柳致眞), 이광래(李光來), 이해랑(李海浪) 등이 설립한 단체였다.
    이후, 그와 같은 초창기 선구자들의 맥을 이어가고자 1975년 봄 이두현(李杜鉉) 교수를
    초대회장으로 하여 국내 유일의 학술적인 연극연구단체로서 한국연극학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한국연극학회의 창립으로 인하여 본격적인 연극학 연구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장한기(張漢基), 이태주(李泰柱), 유민영(柳敏榮), 이상일(李相日), 한상철(韓相喆), 양혜숙(梁惠淑) 등
    각 대학의 국문학, 영문학, 독문학, 불문학 교수들이 주축이었다. 출범과 더불어 한국연극학회는
    곧바로 창립학술발표회를 가져  한국연극학의 현황과 과제를 검토하였으며, 나아가 1978, 1979,
    1980년에는 국제연극학회에 참석하면서 해외 학문적 교류에도 힘썼다.
    1981년 이후부터 <한국연극학>이라는 연구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 서울극평가그룹(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전신) 창립 : 서울극평가그룹은 1977년 12월 20일에 발족하였다.
    당시 여석기, 이상일, 이태주, 양혜숙, 한상철, 유민영, 이반, 서연호, 김문환, 정진수 등 서울지역에서
    연극비평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던 인사들이 이 모임의 발기인들이었다. 그들은 선언문을 통해
    “우리 연극비평가들은 어떠한 저열한 공격에도 주저하지 않고 한국연극의 미래를 위해 정직하게
    분별, 증언, 기록하는 동시에 연극타락에 대한 감시기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비평가로서의 책무와 다짐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 그룹에 소속된 평론가들은 70-80년대 활발해진
    연극 활동과 연극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진 데에 힘입어 <한국연극>, <주간조선>, <뿌리깊은 나무>,
    <문학사상>, <공간> 등과 일간지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1986년 여석기 교수를 1대 회장으로
    하여 한국연극평론가협회로 재정비되었다.

    - 연극전문지 『연극평론』(1970년 창간, 총권 20호, 연극평론사) 창간 및 연극전문지 시대 개막 :
    1970년대는 연극비평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한국연극계의 담론을 주도하고 현장을 견인했던 시기다.
    해외에서 연극학과 비평이론을 공부하고 돌아온 일군의 젊은 연극비평가들을 중심으로 평단이
    급성장하면서 『연극평론』, 『우리무대』, 『현대연극』, 『현대 드라마』, 『한국연극』 등의 전문지들도
    속속 창간되었다. 젊은 비평가들은  ‘서울극평가그룹’, ‘한극회’, ‘한국연극학회’ 등을 구성하면서
    현장비평과 연극학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고 체계를 구축해 나갔으며, 집단 비평 활동을 통해
    현장에 대한 비평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이 시기는 일간지 및 월간지의 연극비평 지면도 확대되어
    연극비평의 대중적 영향력도 크게 성장하였다. 당시의 비평가 그룹은 한국연극을 질적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현장비평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며,
    해외의 새로운 이론과 연출 경향, 실험적 극작술의 희곡들을 적극적으로 번역 소개하였고,
    극작 워크숍 등을 통해 새로운 극작가들을 기르기도 했다. 이들은 비평 활동을 통해 당대의 연극문화를
    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자임했다. 특히 10년간 지속적으로 발행된 『연극평론』은 현장 연극인들이
    해외 연극의 최신 조류들을 신속하게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면서, 사실주의 일변도의
    한국연극계에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을 소개하며 새로운 자극과 활력이 되었다. 더불어 이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의 전통 연희를 바라보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논하면서 ‘전통 연희의 현대화’,
    ‘아시아적인 극’, ‘아시아적인 연극미학’ 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 이를 현장에서 구현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그러한 작업을 비평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다.

    - 번역극 시대, 창작극 활성화 정책의 시작, 대한민국연극제, 전국연극제 실시 : 1970년대 초는
    번역극의 시대라고 할 만큼 번역극이 주류를 이루었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창작극 활성화를
    염려하는 연극계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였으며 실제로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과 현장의 노력이
    진행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1974년 문예진흥원은 창작극 공연 지원의 일환으로
    9개의 극단을 선정하여 창작극을 공연한다는 조건으로 250만 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이고
    연례적인 관주도 연극지원정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1974년의) 창작물의 풍작은
    신극 사상 거의 없었던 일’(유민영, 『경향신문』, 1974.11.14.)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특히 이 사업은 창작극의 지방공연을 조건으로 하고 있어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일조하였다. 여기에 1976년부터 실시된 대한민국연극제, 1983년 창설된 전국연극제 역시 
    창작극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문화예술의 지방과 중앙간의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목적을 내걸었다. 
    그러나 양적인 증가가 곧 창작극 활성화의 결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작극 활성화에
    대한 논란은 1980년대 전국연극제 설치 이후 다시 한 번 지면을 뜨겁게 달군다. 당시 평단은
    연극의 전반적 침체와 질적 저하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젊고 재능 있는 문학 지망생이 
    희곡창작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반성한다.  또한 극작가에 대한 지원과,
    극단이 충분히 작품의 리허설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책이 없는 한 창작극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은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임을 비판한다. 이러한 계속적인 비판들은 결국 1985년
    ‘실질적 지원 제도의 정착’을 내세운 문예진흥원의 ‘창작활성지원계획’의 발표를 가져온다. 
    이것은 기존의 행사지원에서 벗어나 작가에 대한 지원과 대본의 출판 지원, 작품을 공연하려는 극단에
    대한 제작비 지원, 국립극단 전속작가제도 마련 등을 포함하는 구체적 내용으로, 지난 십여 년간의
    지원정책에서 진일보한 구체적이고 현실적 내용을 갖추게 된다.

     - 소극장 시대의 개막과 공연법 개정, 1980년대 연극제작환경의 변화 : 국립극장과 더불어
    1960년대의 대표적 연극 전용관은 드라마센터(1962년 개관)였다. 동인제 극단의 시대로 불리는
    1960년대는 ‘실험극장’을 필두로 ‘민중극장’, ‘산하’, ‘가교’, ‘광장’, ‘자유극장’, ‘여인극장’ 등이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이와 같은 활발한 극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상연공간의 절대적인 부족은 한국연극 발전에 큰 제약이었다. 이런 중 극장이 아닌 카페나 호텔 등의
    공간에서 공연을 시도하는 ‘살롱 드라마’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1969년 소극장 ‘카페 떼아뜨르’의
    설립을 시작으로 에저또 소극장(1969), 실험소극장(1973), 민예소극장(1974), 연극인회관(1974),
    삼일로 창고극장(1975), 공간사랑(1977), 세실극장(1977) 등의 개관이 잇달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장들은 한국연극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공연법에 의하여
    항상 폐관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때문에 공연법 개정은 연극인 모두의 숙원이었는데, 오랜 노력 끝에
    1981년 12월 공연법 개정이 국회를 통과한다. 그런데 소극장의 잇단 개관이 연극계에서
    환영받을 만한 일로만 평가되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소극장 운동이 서양의 그것과는 달리
    실험적인 공간이 되지 못한 채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자주 비판되었다.
    또, 공연법 개정으로 인한 소극장의 증가는 연극계의 양적 성장을 가능케 했고 이에 따른 관객의 확대를
    이루었으나 이와 더불어 상업적 공연의 성행, 입장권 덤핑과 초대권 남발, 훈련되지 못한 신인 극단 난립 등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에 연극계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비평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 전통연극론의 전개 : 196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연극 비평계에서 진행된
    가장 커다란 논의 주제 중 하나는 전통 연극을 어떻게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960년대에 점화된 전통연극의 계승 논의와 민족적 정체성 찾기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다.
    1970년대의 전통연극론은 단순한 담론의 차원이 아니었으며 현장에서의 실천적 작업에 대한 밑받침 혹은
    반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때문에 1970년대의 전통연극론과 이의 현대화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괄목할 성과를 이루게 되며, 1980년대 들어 활발해진 국제교류에 힘입어 대내외적으로 더욱 활기를 띠고
    전개된다.

    - 대중문화 시대의 도래, 뮤지컬 시장의 확대, 예술경영학과의 설치 : 1990년대 이후 한국연극계에는
    대중문화, 대중성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대중물이나 대중문화로서의 연극에 대한 연구는
    우선 음악극(뮤지컬)에 대한 학계의 관심으로 나타났으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신파극, 대중극, 악극 등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활발해졌다. 1993년 『한국연극학』 제5호는
    ‘한국현대 음악극의 현황과 과제’를 기획 주제로 삼고 일련의 기획논문을 싣고 있다. 유민영, 김효경,
    신일수, 정진수, 김우옥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이 기획은 한국 현대음악극의 개념과 역사를 살피고,
    연출, 연기, 무대미술 등 무대예술적 현황과 과제를 검토한 후 음악극 육성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바람직한 한국 현대 음악극의 모형 등을 논의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뮤지컬 시장이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현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가늠해보고자 했던 의도로 보인다. 이후 뮤지컬에 대한 연구는
    양적인 성장을 보이는데, 서양 뮤지컬 뿐 아니라 한국 음악극과 악극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된다.
    또 기존의 연극사 역시 ‘대중’이라는 키워드로 재검토 되거나 ‘지금-현재’ 한국연극의 ‘대중’, ‘대중극’,
    ‘대중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연구도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공연예술의 산업화,
    경영학적 마인드의 도입에 대한 요구도 강해져, 각 대학에 예술경영학과가 설치되기 시작한다.
    또 예술경영인력의 확대와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관련 단체나 학회가 조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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